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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지형을 재편해 온 개방형 플랫폼이자, 신작의 탄생과 유통, 담론의 축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장이다. 해운대의 상영관에 불이 켜지는 순간부터 밤늦은 관객과의 대화(GV), 영화인 라운지의 즉흥 피칭,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과 아시아필름마켓의 계약서 사인까지 하나의 서사가 일주일 남짓의 시간에 응축된다. 이곳에서 세계 각지의 감독과 프로듀서, 비평가, 학계, 팬덤이 함께 호흡하며 영화를 ‘완성’한다. 상영은 출발점일 뿐이며, 관객의 반응, 동료 창작자와의 토론, 투자·배급 미팅을 통해 작품과 창작자는 다음 단계로 도약한다. 부산은 그런 의미에서 축제라기보다 ‘작동하는 생태계’에 가깝다. 본문에서는 이 생태계가 한 감독의 커리어를 어떻게 견인하고, 국경을 넘는 정서적 접속을 어떻게 성사시키며, 아시아 영화의 역사·미학적 좌표를 어떻게 제시하는지, 그리고 왜 부산이 세계 영화인을 위한 열린 거점으로 진화했는지 네 가지 축으로 살펴본다.
부산국제영화제 봉준호의 시작과 현장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남으로써 비평과 산업의 두 축을 동시에 얻었다. 초창기 신작 상영과 시나리오 피칭, 프로젝트 네트워킹을 통해 ‘다음 단계’로 연결되는 통로가 자연스럽게 열렸고, 국내 관객과 해외 게스트의 반응이 한국적 현실을 다루는 봉 감독의 시선을 국제어로 번역했다. 상영 직후 이어진 GV에서 그는 사건 중심의 스릴을 사회적 감각으로 확장하는 방식, 공간·동선·시점의 미세한 설계를 통해 인물의 윤리를 드러내는 법을 쉬운 말로 풀어냈다. 이 대화는 관객에게는 해석의 실마리를, 동료에게는 창작적 자극을, 투자·배급사에는 작품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부산의 관객성—새벽 첫 회차에도 가득 차는 객석, 엔드 크레딧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지키는 집중력—이 그의 영화적 실험을 ‘대중적 가능성’으로 전환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이루어진 수많은 비공식적 만남, 즉 복도에서의 짧은 인사, 라운지에서의 장난스러운 농담,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어지는 토론은 사소해 보여도 협업의 씨앗이 된다. 봉 감독은 이후 세계 무대에서 성취를 이루고도 부산에 들러 후배의 러프컷을 보고 조언하거나, 신인 감독의 프로그램 토크에 기꺼이 앉았다. 부산은 그의 작품 세계가 출발한 장소이자, ‘다음 세대의 작품’을 미리 만나는 연구실로 기능한다. 그 상호작용의 축적이 오늘의 한국영화 생태계를 두텁게 했다. 부산은 또한 봉준호의 영화적 맥락을 확장해 읽어내는 비평의 장이었다. 범죄·스릴러의 문법을 현실 비판과 결합시키는 전략, 인물의 도덕적 딜레마를 코미디와 공포의 경계에서 다루는 감각, 지역과 계급의 질감을 화면의 물성으로 번역하는 기술 등은 상영 후 토론에서 구체적인 장면 분석으로 공유되었다. 관객은 ‘왜 웃어야 하고 언제 불편해야 하는지’를 서로 설명했고, 감독은 그 반응을 다음 작업의 감각으로 수용했다. 이런 왕복운동은 부산이 단순한 ‘박수의 공간’이 아니라 ‘사유의 실험실’임을 보여준다. 한 감독의 성취가 개인의 재능으로만 기억되지 않고 동료와 관객의 공동 작업으로 기록되는 장소—그곳이 바로 부산국제영화제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한국 관객의 만남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부산에서 한국 관객과 오랜 시간 ‘생활의 감정’을 교환해 왔다. 그의 영화는 사건보다 일상의 결을 포착한다. 식탁의 소리, 계절의 빛, 현관 신발의 방향 같은 미세한 디테일로 관계의 온도를 조절하고, 가족이라는 단어가 품은 복합적 감정을 천천히 꺼내 보인다. 부산의 GV는 그 디테일의 언어를 해석하는 공동의 자리였다. 관객은 “왜 인물이 바로 사과하지 않았는가”, “왜 카메라를 조금 멀리 두었는가”를 묻고, 감독은 ‘침묵의 시간’이 관계를 재배열하는 과정임을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관객의 질문은 종종 작품의 층위를 한 겹 더 벗겨냈다. 예컨대 ‘혈연과 돌봄의 경계’를 묻는 토론은 작품의 주제를 보편 윤리로 확장했고, ‘아이 배우의 시점’에 관한 질문은 촬영 현장의 구체적 배려—대사량 조절, 컷 길이, 테이크 숫자—를 끌어냈다. 영화제 바깥의 시간도 중요했다. 해운대 골목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관객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면, 감독은 메모를 남기거나 미소로 답했고, 다음 해 부산에서 그가 꺼내놓은 신작의 에피소드에는 그런 ‘길 위의 이야기’가 흔적처럼 스며 있었다. 상영관에서 흘러넘친 관객이 로비 바닥에 앉아 GV를 듣던 풍경, 자원활동가가 건넨 짧은 감사 인사, 사인회를 기다리던 긴 줄에서 나눈 삶의 일화들은 시간이 지나도 부산의 기억으로 남는다. 고레에다에게 부산은 흥행의 도시가 아니라 ‘공감의 도시’였다. 그 공감은 작품의 의미를 단단히 붙들었고, 그의 영화들이 한국에서 유독 길게 사랑받는 배경이 되었다.
세계 허우샤오시엔과 아시아 영화의 정수
허우샤오시엔의 작품 세계는 부산에서 하나의 ‘교과서’로 읽힌다. 그의 카메라는 사건을 쫓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담는다. 롱테이크의 길고 고요한 호흡, 프레임 밖에서 들려오는 생활음, 인물과 배경의 밀도 있는 공존은 대만 현대사의 층위를 시처럼 겹친다. 부산의 회고전과 마스터 클래스는 그 시학을 해부하는 자리였다. 감독은 “영화는 시간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하며, 역사적 폭력과 일상의 지속을 한 화면에 놓는 윤리를 설명했다. 비평가들은 롱테이크의 윤리성—감정의 강요를 경계하는 태도—을 논했고, 젊은 감독들은 미장센의 구성 원리—빛의 방향, 창과 문틀의 배치, 인물 동선의 제약—을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관객은 느린 리듬을 ‘지루함’이 아니라 ‘경청’으로 번역하는 법을 배웠고, 그 경험은 다른 아시아 영화의 감상에도 길잡이가 되었다. 허우의 상영 뒤에는 늘 긴 여운이 남았다. 부산은 그 여운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산책하듯 이어지는 GV, 상영 사이사이 편성된 크리틱스 토크, 도서관과 미술관에서 열린 연계 전시는 영화가 페이지를 바꿔가며 남기는 흔적을 관객이 찬찬히 더듬게 했다. 그의 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각별했던 이유는 역사·정치의 무게를 개념이 아닌 감각으로 체험하게 했기 때문이다. 부산은 그 감각을 ‘공동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 중계지였다. 여기서 허우의 영화는 단지 한 국가의 작품이 아니라 ‘아시아 영화의 정수’로 호명되었고, 관객은 내 취향의 영화에서 우리 시대의 기록으로 시야를 넓혔다.
교류 플랫폼 부산, 세계 영화인의 열린 장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쟁력은 결국 ‘교류’에서 나온다. 상영 프로그램(뉴 커런츠, 플래시 포워드, 아이콘 등)은 미학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은 신인·중견 감독의 기획을 투자·배급과 연결한다. 아시아필름마켓은 완성작 세일즈, 포스트 프로덕션, 리메이크 판권, OTT 협업까지 산업 전 주기를 한 자리로 모은다. 이 구조 덕분에 부산은 데뷔작의 첫 공개, 후속작의 개발, 해외 진출의 계약이 한 도시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드문 사례가 되었다. 세계의 감독들은 이 도시에서 자신이 속한 영화 문화권을 넘어 아시아 관객의 정서와 호흡을 체험한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장이머우 등 국제적 거장들은 부산 무대에서 신작의 미학적 선택을 해설하고, 지역의 이야기들이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한다. 부산의 관객성은 특별하다. 평일 오전 상영에도 긴 줄이 생기고, 좌석이 가득 찬 GV에서 마지막 질문이 끝날 때까지 객석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 집중력은 감독에게 ‘다음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창작의 자극이다. 자원활동가와 시민 자치의 운영 시스템, 지역 상권과의 상생, 바다와 도시 풍경이 더하는 체험의 기억은 영화제의 ‘장소성’을 강하게 만든다. 상영관을 나와 바람을 맞으며 나눈 두세 마디의 감상, 자정 이후 라운지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미니 피칭, 숙소 로비에서 이뤄지는 번개 미팅은 공식 프로그램 못지않게 중요하다. 교류는 이렇게 사소한 대화에서 시작해 공동 제작, 시나리오 자문, 현지 로케이션 협력으로 확장된다. 부산이 ‘열린 장’이라는 말은 수사가 아니다. 이 도시는 영화가 영사기를 떠난 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가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전의 해답을 제공한다. 그래서 부산은 세계 영화인의 ‘경유지’가 아니라 ‘목적지’로 자리 잡았다. 정리하자면, 부산국제영화제는 한 편의 영화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넘어, 창작과 비평, 산업과 교육, 지역과 세계가 서로를 갱신하는 교류의 생태계다. 봉준호의 시작을 지탱한 현장의 응원과 토론,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한국 관객이 쌓아 올린 생활의 공감, 허우샤오시엔이 전한 시간의 윤리를 둘러싼 공부의 장, 그리고 전 세계 영화인이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산업의 허브가 같은 시간·공간에서 겹쳐진다. 이 중첩은 해마다 새로운 감독과 작품을 부산으로 불러들이고, 이전 세대의 성취를 다음 세대의 자산으로 전환한다. 바다는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파도는 한 번도 같은 모양으로 오지 않는다. 부산의 가을도 그렇다. 같은 축제, 다른 발견. 이 리듬이 지속되는 한, 부산은 세계 영화가 만나고 자라는 ‘창작의 항구’로 더 깊고 넓게 확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