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슈퍼히어로 이미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올드 가드(The Old Guard)」는 영웅의 ‘탄생’을 축으로 삼는 전통적 슈퍼히어로 문법에서 한 걸음 비켜서, 이미 수세기를 살아온 불사의 용병 집단이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새로운 힘의 습득이나 코스튬의 장착, 팀의 결성 같은 상징적 의식이 아니라, 끝없는 시간의 무게가 개인과 공동체의 윤리에 어떤 균열을 내는지, 그리고 그 균열이 다시 어떻게 봉합 혹은 전이되는지를 추적하는 데 있다. 본 분석은 세 갈래—서사 구조의 전환, 캐릭터 구성의 윤리, 철학적 메시지의 재지정—로 나누어 「올드 가드」가 슈퍼히어로 장르를 어떻게 갱신하는지 살피되, 비교 대상으로 전형적 성장서사를 택해 차이를 가시화한다. 동시에 액션 코레오그래피·촬영·사운드가 감정선과 어떤 방식으로 연동되는지도 간단히 짚어, 표면적 스펙터클이 아닌 감정의 지속을 만드는 기술적 토대를 드러낸다.

    서사 관점: 탄생서사 대신 서사 지속의 피로

    전통적 슈퍼히어로 영화의 첫 막은 대개 ‘힘의 획득’과 그 부작용을 다루는 통과의례로 구성된다. 발현—혼란—통제의 3단계를 거쳐, 주인공은 능력을 세계에 배치하는 방식을 배운다. 반면 「올드 가드」는 이 통과의례를 과거로 밀어 두고, 이미 힘의 단계적 학습을 끝낸 자들이 지속의 비용을 치르는 국면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앤디는 수천 년의 전투와 상실을 지나 신념의 마모를 겪고, 동료들은 불멸이 낳은 죄책·단절·기억 과잉으로 흔들린다. 내러티브의 동력은 ‘어떻게 강해질 것인가’가 아니라 ‘왜 계속할 것인가’라는 동기에 있다. 이 설계는 갈등의 크기를 크로스오버 스케일로 키우지 않고, 내면의 타이머를 서스펜스로 치환한다. 불멸의 부상 회복은 액션의 치트키가 아니라, 인간적인 상처가 즉시 사라질 수 없음을 역설하는 아이러니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 영화는 ‘새로운 불멸자’ 나일의 합류를 통해 장르의 관습적 기원을 최소치만 남기고 재구성한다. 나일의 즉각적 회복과 공포, 윤리적 거부는 관객이 익숙한 기원서사의 감정곡선을 환기하지만, 그 감정은 소속과 책임이라는 다른 질문으로 방향을 튼다. 플롯의 중반에는 불멸의 전략적 가치를 탐하는 기업·과학 권력이 개입하는데, 이때의 대립은 ‘악의 과장’이 아니라 ‘선의의 공리화’가 낳는 폭력으로 그려진다. 불멸의 샘플링—치료 혁신—인류 구원이라는 논리 사슬이 윤리적 고려를 삭제하는 순간, 서사는 단순한 선악 대결 대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는 정치철학의 질문으로 전환된다. 그 결과 결말부의 감정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불안정한 합의, 즉 ‘지금 당장은 계속하겠다’는 유예의 결심으로 수렴한다. 관객은 전투의 결과보다 결심의 근거에 반응하게 되고, 이는 반복 관람에서 더 크게 작동하는 여백이 된다.

    캐릭터 스펙트럼: 결함을 전제로 한 캐릭터 윤리

    「올드 가드」의 인물 설계는 ‘절대 선’의 상징을 거부하고, 결함을 존립 조건으로 수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앤디는 신화적 전사지만, 무력감과 회의, 피로가 삶의 표면에 드러난다. 불멸의 회복이 때로 지연되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설정은 그녀의 신체를 다시 ‘위험’에 노출시키며, 전투의 긴장을 현실감 있게 복원한다. 니키와 조의 관계는 장르 장식이 아니라 서사의 핵심 축으로 배치되어, 사랑과 신념의 상호 보강이 전투력의 원천이 됨을 보여준다. 이는 다양성의 표기(checkmark)가 아니라, 공동체 지속의 실제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 북 커의 배반은 클리셰처럼 보이지만, 그 동기—끝없는 상실의 누적과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절박—는 영웅서사 바깥의 지점을 드러낸다. 나일은 팀에 입문하는 관문자이자 관객의 윤리적 대리인으로 작동한다. 그녀는 군인으로서의 명령과 인간으로서의 직관 사이에서 망설이고, 그 망설임은 팀의 폭력 사용과 비밀주의를 재검증하게 만든다. 캐릭터의 국적·언어·신념이 단순 표면이 아니라 행동의 문법을 규정한다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길어 올린 생존 기술과 세계관은 팀 전술을 다층 화하고, 의견 충돌을 ‘드라마’로 변환한다. 액션 또한 캐릭터의 논리로 배치된다. 총·검·맨손 전환의 타이밍, 엄폐—진입—탈출의 리듬, 합 움직임에서 드러나는 신뢰의 모양은 인물 관계의 현재 상태를 실시간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격투는 서사의 장치이자 관계의 언어다. 결함을 전제로 한 이 스펙트럼은 ‘성장’ 대신 ‘유지’라는 더 어려운 과제를 인물에게 부여한다. 선량함은 이들이 원래 그런 존재라서가 아니라, 서로 감시하고 말리며 설득하는 피곤한 노동의 결과로 남는다.

    올드 가드 철학: 존재의 책임과 회의의 윤리

    전통 영웅담이 ‘정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직선운동을 한다면, 「올드 가드」는 계속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정의의 유효성’을 되묻는 원운동을 택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두 겹으로 갈라진다. 첫째, 직접성의 한계. 당장의 선행이 구조를 바꾸지 못할 때 성취감은 지워지고, 무력감이 누적된다. 둘째, 간접성의 가능. 영화가 제시하는 과거-현재-미래의 연쇄는 작은 구원이 먼 미래의 수천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통계가 아닌 서사로 입증한다. 이때 메시지는 도식적 낙관도, 냉소적 절망도 아니다. ‘알 수 없지만 계속하자’는 실천의 윤리, 즉 불확실성을 전제한 책임의 지속이다. 윤리는 또한 ‘누구를 위해’의 축에서 재배치된다. 기업-국가-과학의 공리주의는 구원 대상의 확장을 명분으로, 개인의 동의와 존엄을 비용 항목으로 전락시킨다. 영화는 이 지점을 명백히 악의로 기입하기보다, ‘선의가 제도에 흡수될 때’의 위험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싸움은 악당 격파의 통쾌함이 아니라, 제도적 포섭을 거부하는 고단한 자율의 유지로 읽힌다. 불멸의 시간 감각은 존재론도 바꿔 놓는다. 죽음의 부재는 삶의 경중을 흐리게 만들 수 있고, 그 공허는 관계—특히 동료애와 사랑—로만 메워진다. 이 연결은 단단하지만 동시에 취약하다. 한 고리의 균열이 전체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라스트의 선택이 승리의 야광과 함께 끝나지 않고, 새로운 감시와 상호 확약, 더 엄격한 내규로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의’는 선언이 아니라 생활규정이고, 책임은 영웅의 특권이 아니라 피곤한 습관이다. 이런 정의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속이 세계의 작은 균열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밀어 놓는다. 요약하면 「올드 가드」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기원—성장—구원’ 삼단 논법을 ‘지속—회의—책임’의 순환으로 바꾸며, 영웅 서사의 정동을 새롭게 배치한다. 서사는 탄생 대신 소멸의 가능성을, 캐릭터는 무결함 대신 불완전의 연대를, 메시지는 외부의 악 제거 대신 내부의 윤리 유지라는 과업을 전면에 둔다. 기술적으로는 근접 액션의 질감과 회복의 물리, 로케이션의 거칠음, 음향의 심박 동기화가 감정의 표면을 지지하며, 편집은 승리의 고조를 절제해 여운을 남긴다. 이 결과, 영화는 ‘강함’의 스펙터클보다 ‘계속함’의 윤리를 관객의 몸에 새긴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다음 국면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이들에게, 「올드 가드」는 답을 내리기보다 질문의 좌표를 제공한다. 그 좌표 위에서 우리는 더 적게 환호하고 더 오래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유의 시간이, 장르의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만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