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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택시운전사

    제헌절은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날을 기리는 국가 기념일이자, 국민주권과 기본권 보장이 국가 운영의 출발점임을 확인하는 상징적 순간이다. 그러나 기념일은 반복될수록 형식이 앞서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제헌절마다 헌법의 조항을 단순히 암송하는 대신, 그 정신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여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라는 비극의 현장을 통해, 헌법이 부재하거나 무력화되었을 때 시민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개인의 양심과 용기가 국가 권력의 폭력 앞에서도 역사를 움직일 수 있음을 증언한다. 제헌절과 이 영화의 만남은 과거를 추모하는 의식이 아니라, 현재의 민주주의를 점검하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요청이다. 법률 문구의 약속이 시민의 안전과 존엄, 표현과 집회의 자유로 구체화될 때, 제헌절은 비로소 오늘의 축제가 된다.

    제헌절의 뜻과 광주가 건넨 질문

    1948년 7월 17일 제정·공포된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했다.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제11조는 평등권을, 제12조는 신체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이러한 약속이 현실에서 무너지는 순간을 기록한다. <택시운전사>가 비춘 1980년 광주는 그 전형이다. 계엄과 보도통제가 겹친 도시에서 총칼 앞에 선 시민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진실은 정권의 언어로 대체됐다. 그때 한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독일 기자를 태우고 봉쇄선을 뚫어 광주로 향한다. 초기의 동기는 생계였지만, 그는 거리에서 스러지는 청년과 울부짖는 어머니, 피 냄새와 사이렌이 교차하는 밤을 목격하며 자신의 선택이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공적 책임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제헌절의 질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민주공화국은 법전의 활자만으로 유지되는가, 아니면 그 조항을 현실에서 작동시키려는 시민의 의지와 연대로 유지되는가. 헌법은 문자로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는 몸으로 지켜야 할 생활의 기술이다. 광주가 건넨 질문은 제헌절의 질문과 겹친다. “권력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제헌절의 가치는 헌법 문구의 암송에 있지 않고, 위기 앞에서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행동하는 시민성의 회복에 있다.

    한 운전사의 여정이 보여준 헌법의 실천

    <택시운전사>는 ‘선한 의도’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밀하게 보여준다. 김만섭(실존 인물 김사복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은 도로를 막아선 검문소와 장갑차, 무장 병력, 체계적으로 봉쇄된 통신과 도심의 매캐한 연기 속을 돌파해야 했다. 그가 선택한 일련의 행동—우회로를 찾고, 동료 운전사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거짓 정보를 흘려 길을 열고, 무엇보다도 외신 기자의 카메라와 테이프를 지켜 국경 밖으로 내보내려는 시도—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가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시민이 어떤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킨다. 권리는 선언으로 주어지지만, 실천은 행동으로만 증명된다. 이 여정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층위는 ‘두려움을 관리하는 법’이다. 그는 가족을 떠올리며 돌아설 이유를 수없이 만났지만, 눈앞의 부상자와 진실을 기록하려는 기자의 떨리는 손을 보며 다시 전진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시민성은 영웅적 과시가 아니라, 위험의 비용을 계산한 끝에 내리는 책임 있는 선택의 연속이다. 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투표와 감시, 정보 검증, 혐오 대신 사실을 기준으로 토론하는 습관, 지방과 중앙 권력을 균형 있게 요구하는 태도—이 모든 것이 ‘헌법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시민의 권리와 책임은 경쟁하는 값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키는 짝이며, 제헌절은 그 균형을 삶의 현장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언론 자유와 진실의 전달을 되새김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 조항은 단순히 기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술적 문구가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를 교정하고 회복하는 자가면역 기제를 규정한다. <택시운전사>의 중심에는 이 자유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시도가 있다. 힌츠페터의 카메라는 총성과 비명 사이로 흔들리고, 필름은 압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나뉘어 숨겨진다. 전기가 끊긴 밤, 호텔 복도에서 이뤄지는 은밀한 복제와 전달,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의 긴박한 추격은 진실이 세상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수작업’을 보여준다. 이 기록은 곧 국제사회의 시선을 광주에 고정시키고, 뒤늦은 연대와 내부 성찰을 촉발한다. 중요한 것은, 기록이 단지 외부 고발을 넘어 내부의 치유를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상처는 드러나야 아문다. 거짓 없는 기록은 피해자에게 “당신은 보였다”는 확인을, 가해 시스템에는 “우리는 기억한다”는 경고를 건넨다. 오늘의 미디어 환경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방적이다. 그러나 속도와 확산이 진실성의 보증은 아니다. 제헌절의 관점에서 언론 자유는 ‘무제한의 표현’이 아니라 ‘책임 있는 검증’과 ‘피해 최소화 원칙’을 동반한 공적 기능이다. 시민은 구독과 클릭, 제보와 팩트체크 참여를 통해 이 생태계를 함께 설계한다. 결론적으로,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사치품이 아니라 안전장치이며, 기록은 권력을 통제하는 도구이자 공동체 회복의 처방전이다. 우리는 제헌절마다 ‘무엇을 더 말할 자유’보다 ‘어떻게 더 정확히 말할 의무’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침내 제헌절은 과거를 기념하는 국정 행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헌법의 언어를 우리의 생활로 번역하는 날이다. <택시운전사>가 보여준 한 운전사의 망설임과 결단, 기록자들의 손 떨림, 광주 시민의 연대는 법전이 아닌 거리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체화되는지를 증언한다. 우리의 과제는 명확하다. 기본권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권력의 편의를 시민의 편의로 대체하며, 사실과 책임을 민주적 토론의 기준으로 삼는 일이다. 제헌절이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의 나는 헌법을 얼마나 현실로 만들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쌓일 때, 민주공화국은 어제보다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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