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은 단순한 괴물과 싸우는 액션 애니메이션이 아닙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복잡한 정치 서사, 인간 심리, 기억의 조작, 민족주의와 같은 거대한 주제를 다루며 현대 사회와의 연결점까지 제시하는 작품으로 발전합니다. 각 시즌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인물과 세계관은 거듭된 반전을 통해 완전히 재구성됩니다. 이 글에서는 진격의 거인을 시즌별로 나눠 핵심적인 줄거리와 철학적 주제를 함께 정리합니다.
시즌1: 괴물의 공포, 그리고 의심의 시작
진격의 거인 시즌 1은 '벽 안 세계'의 극단적인 폐쇄성과 외부로부터의 위협이라는 구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야기는 초거인의 등장과 시나 구의 붕괴로 시작되며, 이때 에렌의 어머니가 거인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작품 전반의 동기를 설명하는 핵심 사건입니다. 생존과 복수, 두려움과 집착이 캐릭터들에게 내면화되며, 시청자는 그들과 함께 공포를 체험하게 됩니다. 시즌 1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의 존엄성과 거인의 정체에 대한 불신입니다. 조사병단이 외부 세계로 나가는 과정, 엘빈 스미스의 리더십, 거 인화된 에렌의 등장 등은 단순한 액션 이상의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특히 ‘여성형 거인’으로 밝혀진 애니 레온하트와의 싸움은 "누가 적이고, 누가 동료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처음으로 부각합니다. 더 나아가, 시즌 1 마지막에 밝혀지는 ‘벽 안 거인의 얼굴’은 신앙과 정치, 그리고 과학이 뒤엉킨 복합적 세계관을 암시하며 시즌 2 이후 서사의 기반이 됩니다.
시즌2~3: 진실의 벽과 정체성 붕괴
시즌 2는 짧지만 강렬한 파장을 남깁니다. 주요 인물의 정체가 연달아 폭로되며, 작품의 장르가 미스터리에서 정치 드라마로 전환되는 기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라이너 브라운과 베르톨트 후버가 '갑옷 거인'과 '초거인'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장면은 애니메이션 역사상 손꼽히는 반전 장면 중 하나입니다. 친구였던 이들이 적이 되는 설정은 단순한 배신을 넘어, 인간 내면의 다면성과 정치적 도구화 문제를 드러냅니다.
시즌 3는 두 개의 축으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파르디섬 내부의 쿠데타와 로드 레이스 왕가의 붕괴, 그리고 외부 세계를 향한 조사병단의 마지막 탐사가 그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히스토리아가 진정한 ‘여왕’으로 성장하며 권력과 책임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에렌이 ‘좌표의 힘’을 계승하며 자신이 가진 권능과 그 기원을 자각하는 과정은 캐릭터 발전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시즈간시나 구 탈환전’은 진격의 거인 전체 서사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전투 파트로, 아르민의 희생, 에르빈의 마지막 돌격, 그리고 리바이의 인간성과 군인의 양면성까지 깊게 조명됩니다. 이 에피소드는 영웅이 무엇인가, 희생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이후 최종 시즌으로 가는 철학적 통로를 열어 줍니다.
최종 시즌: 자유를 둘러싼 도덕의 전쟁
최종 시즌에서는 진격의 거인의 본질적 테마가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마레 제국, 엘디아인, 세계 연합국 등 다양한 국가와 이념이 충돌하며, 서사는 국가 대 국가, 인종 대 인종의 대립 구도로 확장됩니다. 처음으로 시청자는 에렌이 아닌, 적국인 마레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되며, 가비 브라운과 팔코 그라이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대의 고뇌가 부각됩니다. 이전 시즌까지 정의로 그려졌던 에렌 예거는 이제 세계를 파괴하려는 인물로 변모합니다. ‘땅울림’이라는 대규모 파괴행위는 과연 방어인가 침략인가라는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진격의 거인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넘어 ‘어떻게 세계를 바라볼 것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크 예거와 에렌의 사상 충돌은 민족주의와 유전적 결정론, 자유의 본질까지 다루며, 좌표 세계에서 벌어지는 대화는 시간 개념과 인과율을 해체합니다. 최종 전투에서는 아르민, 미카사, 리바이 등이 에렌을 저지하기 위해 연합하며, 그들의 고통과 선택이 핵심 감정선으로 작용합니다. 미카사의 마지막 선택은 인간적인 사랑과 전 인류의 생존이라는 주제를 통합하는 결정적 장면이며, 동시에 에렌이라는 인물이 남긴 질문—‘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결론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진격의 거인은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모든 인물의 운명과 세계사의 흐름을 재해석합니다. 각자의 과거를 안고 선택한 행동은 후대에 의해 기억되고 왜곡되며, 이 과정이 진실의 본질을 흔드는 구조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진격의 거인은 ‘괴물과 싸우는 인간의 이야기’로 출발했지만, 마지막에는 ‘인간이 괴물이 되는 과정’을 가장 치밀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시즌별로 발전하는 세계관, 변화하는 인물의 신념, 충돌하는 이념은 현실의 국제 정세와 철학적 질문을 그대로 투영하며, 시청자에게 단순한 재미 이상의 사유를 요구합니다. 시즌 1에서는 ‘거인은 누구인가’, 시즌 2~3에서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최종 시즌에서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진격의 거인은 10년 넘게 이어진 이야기의 마침표를 철학적으로 완결합니다. 단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동시대 정치와 인간성을 비추는 거울 같은 서사이기에 지금도 많은 독자와 시청자에게 회자되는 걸작입니다.